한달, 50일, 100일.
그리고 스마트 폰
형호는 어떤 사람이었니
형호의 형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에요.
질문에 그녀는 웃음지으며 이야기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사람… 저를 너무 사랑해준 사람이요.
동생이 떠난 다음날 23시경 찾아온 동생의 동아리 후배는 동생이 얼마나 좋은 선배였는지를 알려주었다. 내가 보는 동생과 다른 사람이 보는 동생은 조금 달랐다. 선배로서, 친구로서의 동생. 유머가 있고 젠틀한 선배였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다른사람들이 보는 동생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자리에 있던 동생 친구들에게 묻고, 그녀(동생의 아내)가 생각하는 동생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단순하고 추상적인 답은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웠지만 결국 그 두개의 문장과 웃음이 전부였다.
동생은 암으로 2년 반동안 고생을 했었다. 2011년 1월 설암수술후 4월까지 본가에서 요양하고, 7월 검진때 폐암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로부터 2년동안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2년반 기간동안 본가에서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지낸 기간이 대부분이었고, 그래도 집을 오래 비우면 안된다고 서울 본인집에 돌아가서 지낸 기간이 9개월 가량이었다. 하지만 폐암이라는 병은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몸이 꺾이면서 계단 내려가듯 안좋아지는 병이었고 그런 상태가 계속 되었다.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에 있을때는 살이 붙다가도, 서울 본인 집으로만 가면 몸이 안좋아져서 다시 본가로 들어오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부모님은 걱정이 되셔서 동생이 서울집에 있더라도 경기도에서 음식을 해서 집으로 나르는 생활을 계속하셨다. 동생이 음식을 챙기는데 요령이 부족한 어려움이 있었고, 직장을 다니는 (동생의) 아내가 챙겨주기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회사일은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 같은데도, 집안일은 그 손쓰임이 다른지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이 청소하고 음식을 챙기는 생활이었다. 한달에 한번정도 있는 병원진료도 동생의 아내는 회사원이라 가지 못해서 항상 형수(내 아내)와 함께 병원을 갔었다.
폐암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지인들은 “왜 서울에 있어? 공기 좋은데로 짐싸서 가야지”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의 직업이 서울에 있어 본인만 갈수도 없다 했었다. 성당에서 지원하는 요양센타에서 한달씩 시간을 보내기는 했고,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올때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폐암환자의 치료란 결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암의 치료란 영양분과 공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동생은 항상 비용이 적게드는 방법으로 치료방법을 잡았다. 그래서 신약도 적용하게 되었고, 유명 요양병원도 지방에서 숙식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가지 못했다. 당장 항암 치료할때나 각종 검진비용에 대한 비용도 보험이 있기는 했지만 비용이 전부 인정되지 않아 가계가 어렵다 했었다. (동생의) 아내는 은행원이었기 때문에 세부사항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동생은 암치료 방법을 찾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모든 보험금 청구 및 세부사항에 대한 관리는 그녀가 담당했었다.
2012년 가을경 동생은 아내도 아내의 길을 찾고, 본인도 본인의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혼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 후 에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 형수(내 아내)가 물었다. “저번에 이야기한 것 어떻게 된거야?” “이야기 했었는데요. 아내가 저 살려보고 싶데요. 그래서 안헤어지기로 했어요.” 라고 동생이 답했다.
그건 네 희생인데?
형수가 말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나는 그들이 그렇게 정했다면 우리가 간섭할 수 없는 문제라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쉬운 마음이 컸다. 사람의 말이 그러하다면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남아있는 건 말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보고 배운바가 있어야 하는데 보고 배우지 못했다면 말과 마음이 그러하더라도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음식과 환경)을 해주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에서 필요한것만 한다는 것.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어떤 사람인지 알게된다는 점.
동생은 본인이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형(나)이나 부모님,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해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했다. 암과 돈. 두마리 토끼를 항상 같이 생각해야 했었던 것도 30대 중반 암에 걸린 가장에게는 큰 짐이었으리라. (동생의 장인어른은 그녀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고, 그때 장모님이 간병하느라 우울증이 있어 알리지 않는게 낫겠다 했었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본인과 그 아내가 그렇게 이야기해서 더 강요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생의 처가집은 설암수술은 알았지만 2년동안 동생의 폐암발병여부에 대해 모르다가 동생의 여명이 얼마남지 않음을 알린 2013.7.29 경 그 내용을 동생의 아내를 통해 알았다)
동생이 새벽에 급하게 찾았다. 병원으로 달려간 형에게 말했다.
형 나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진작 이렇게 마음먹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내가 항상 이렇게 늦다.
퉁퉁 부어있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부은 얼굴도 저렇게 환하게 보일수 있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4인 병실이 불편해서 1인실로 옮겼다. 짐을 옮기고 몇가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갑자기 동생이 침대위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뭐야. 뭐야. 왜 이래. 왜 괜찮아져. 이러면 어쩌라고.
그리고는 침대 안전바를 흔들면서 오열했다.
아 어쩌라고 괜찮아져. 나 돈도 없는데. 1인실에서 이러면 어떻게 해.
그 놈의 돈이 뭔지. 저놈 자기 목숨이 경각에 있는데도 저렇게 돈때문에 걱정하는구나. 같이 울었다. 그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몸 상태가 다시 괜찮아진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항암치료는 더 받지 않기. 그리고 다시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였다.
그래 그러는게 맞겠어. 그냥 난 오늘을 즐길래.
눈을 감고 침대에 앉아 음악을 듣는것 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동생이 말했다.
폐암이 커져있다는 것은 말을 편히 할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원래 발병했던 설암(두경부암)도 절제해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곳도 암이 퍼져있어서 이야기나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했다.
형. 사람들이 내가 괜찮아 보여서 그냥 알아듣는다 생각하고 말 하곤 하는데 사실 오른쪽 잘 안들려. 그리고 이해하려고 집중해야지 이해돼. 그렇게 듣는거야.
그런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동생에게 내가 가진 컨텐츠나 방법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네가 가르쳐준 이야기들이 큰 자양분이 됐어. 걱정하지마. 다 잘될거야.
그리고 매일매일 퇴근후 병원에 들러 동생과 함께한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결국 정확히 한달후 동생은 떠났다.
합병증이 치료되어 퇴원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금 퇴원하지 못하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동생의 몸상태는 걸음과 대소변을 혼자 해결할수 없는 상태여서 집에 준비가 필요하다 했다. 동생의 아내는 휴직상태로 어머니와 주야간을 번갈아가면서 간병을 하고 있었다.
8월 12일(월) 사돈총각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동생의 아내가 전날 이야기했다. 월요일 저녁에 만났다. 정중한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정말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저희가 병원에 가도 도움될게 없어서 안가고 있습니다.
결국 요점은 퇴원후 여동생 혼자 있을때 형호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와 현재 휴직상태인데 경제적인 부분을 도와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사람이란게 그렇구나… 결국 동생을 위하는 이야기구나.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어련히 알아서 할까… 저 말 하려고 오늘 보자고 한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이 시켜서 하는것처럼 느껴져서 매일 병원을 가다가 월요일 저녁이후 화,수는 가지 않았다. 퇴원만 하면 되고, 야간은 동생의 아내, 주간은 어머니가 교대로 간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월 15일(목) 아직 퇴원전이다. 병원비 및 1인실 비용은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병원에 찾아가 이야기했다. 동생의 아내도 오라했지만 전날 동생 병간호 하느라 잠을 못자서 지금 못오고 저녁 늦게 올수 있다 했다.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퇴원하지 않으면 집에도 못 가보고 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형도 생각해 달라는 것.
내가 집에 도움이 될 나이인데 지금 이렇게 짐이 되어버렸어. 돈벌때 엄니한테 형한테 뭘 해줄수 있겠다 생각해서 기분 정말 좋았는데 얼마 벌지도 못하고 이렇게 되어버렸어.
오열하는 동생을 보며 참 슬펐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그리고 이야기 했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너는 나에게 좋은 동생이라고, 미안해 말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는 날이었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고. 약에 대한 준비시간도 필요하니 내일 퇴원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몸 상태에 따라 금요일 아니면 토요일에 퇴원하기로 했다. 동생은 다음날인 금요일 퇴원했다.
퇴원후 저녁때 어머니가 서울집에 같이 주무시고 낮에 집에 다녀오시는 간병생활이 시작되었다. 동생의 아내는 첫날 음식 장을 보고 더이상 장을 보지 않았다. 음식준비는 간병을 위해 마포에서 잠을 자고, 낮에 일산 집에 다녀오시는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고 (나중에) 알았다. 왜 장을 안보냐는 어머니의 말에 일주일에 한번 장본다는 며느리의 대답이 있었다고 한다. 퇴원후 떠나기 전까지 10일이 있었기 때문에 말만 하는 사람과 행동을 같이 보이는 사람이 명확히 구분되었다. 동생의 처가집에서도 정말 마음만 굴뚝같았는지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었다.

8월 25일(일)
동생집에 방문을 했다. 동생의 아내가 말했다.
그래도 죽기는 싫은가봐요. 이대로는 못산다고 같이 떨어져 죽자고 했는데 대답안하더라구요.
동생은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말하기도 어려운상태였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힘드니까 그냥 하는 이야기지 라며 웃으며 돌리는 이야기로.
정말이에요. 9층이면 죽지않고 다치기만 할까. 아래 나무 없나 보고 그랬어요.
확인하듯 이야기한다. 많이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래도 좀 심했다. 동생 마음은 어떨까.
무더운 여름날 동생은 거실쇼파에 계속 있었다. 거동이 불편했고, 두명이 간호하기에 방은 비좁았다. 거실 쇼파에서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불편한 숨을 이리 저리 고르고 있었다.
엄니 저 아래로 내려줘요.
처음으로 바닥에 앉게 해달라 했다. 동생의 아내는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고, 동생이 바닥에 내려오며 엄니와 마주보고 앉는 순간 퍼뜩 엄마의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말했다.
형호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떠나 간단다. 너는 좀 빨리 가는 것 뿐이야. 그러니 너무 아쉬워 말아라 알았지?
모자(母子)는 그렇게 앉아서 눈을 마주 보았다. 그때의 깨끗한 흰자위, 맑은 눈빛을 어머니는 두고두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마주보다 갑자기 숨을 후욱하고 크게 들이마시더니 뒤로 쓰러졌다.
동생은
그렇게
떠나갔다.
Siri 메모의 장점은 연사가 대화하듯 연습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길을 걸어가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좀 이상해보이는 단점은 있다.
연설을 하는 것처럼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세 번째 결론을 미리 생각해보고 말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음성 인식율을 높이려 단어를 끊고, 억양을 만드는 것 또한 연습이 되지 않겠나.
시간에 대한 태도 중 가장 주의할점은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쉬어도 좋고 멍하니 있어도 좋다. 주의할 것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10초만 멈추고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멈춰라. 그리고 숨쉬어라. 헛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고삐를 잡아 줄 것이다.
메모 방식의 변화.
공유의 시대에서, 숙성과 선별의 시대
https://twitter.com/ehrok/status/406583527665180672
😐 중간정도의 글은 페이스북 담벼락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아이폰 기본공유항목에 속해 있으며, 140자를 소화할 수 있으니. 메일을 활용한 포스팅을 해도 되긴하다. 이젠 링크도 잘 들어가보지 않는다는 것을 참고.
담벼락을 뒤돌아 보았다. 나는 그동안 어떤 글을 써왔었나. 어떤 일이 있었나 되돌아 보고 싶었다. 바쁜 생활에 간간히 친구,지인들과 농담할수 있는 공간이었고, 만나진 못하더라도 같은 생각을 나눌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눈다 보다는 찾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을까. 2011년 1월. 그때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구나. 2010-2011경에는 전부를 이야기했더니 어렵다 해서 그 다음 부터는 가능한 부분만 이야기한다. 너무 간단하게 이야기했나. 다들 가까이는 가는데 풍덩 들어가지는 않는다. 몇몇 조언을 했던 멘티 한명이 다가와서 이야기한다. “다들 왜? 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큰 그림을 한번 설명해주시는건 어떨까요?” 새로운 단어가 많아지면 다들 어려워한다고 답했다. “그래도 이제는 한번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고민중이다.
SNS. 저는 친구 찾기로만 이해되는 상황이 조금 아쉽더군요. Human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상호 조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의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Know Can Do 와 SNS. 비움과 배려가 저의 2011년 KEYWORD입니다. via 록 담벼락 – 2009 년에 읽었던 책입니다. 2011.1.2
1월초에 윗 글을 적을 때만해도 동생이 암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알게 된 후에 찍은 지하철역 사진이다.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길이었다. 전학가기전에 집은 잠원동, 학교는 합정동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형과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은 매번 지하철을 타고 2호선과 3호선을 다녔다.
동생이 폐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적은 글이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어떤 글은 그때의 나를 마주하게 한다.
내 마음을 누가 알까. 네 마음을 누가 알꼬
누구나 사용하면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것과 같아졌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균형된 감각을 기르기에는 부족하지만 약한고리를 연결하고, 사람을 발견하고, 기록을 남기기에는 매우 유용하다. 3년전을 되돌아보면서 그때의 글들을 꺼내서 포스팅해보는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부족으로 단어만 남기거나, 모르겠다는 미완의 글도 많지만 그 글들이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을 몰랐는지를 모르는 시점이 오기 때문에 안다고 남기는 것 만큼 모르겠다는 기록도 중요하다.
캘린더는 보통 약속을 입력한다. 약속을 잊지 않기위해서 입력하는데 한번 기록된 내용 은 다시 돌아보기 유용하다. 온라인 캘린더를 쓰는 경우 검색하기에도 유용하다. 또한, 캘린더 앱도 다양해져서 어떤 앱은 약속을 클릭하면 그 약속에 있는 사람과 어떤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지도 나온다.1 미팅에 들어가기에 앞서 최근 주고받은 내용을 되새기기에 적당하다.
약속과 함께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할일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익숙하지 않다면 할일관리도 부가적인 업무가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우선순위를 항상 꿰고 있는 것이고, 그 우선순위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할일관리란 해야 되는 일이라기 보다 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게 중요한데, 그 또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초기 습관을 만들 때는 할일관리(라기보다는 한 일관리)를 어느정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GTD 방식의 Toodledo를 써보다가 단순한 Google 태스크를 활용했었다. 최근에는 수첩(또는 스마트폰 메모장)과 이메일2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아이폰5S로 바꾸고 나서 기본앱인 미리알림(Reminder)를 사용해보게 되었다. Draft App으로 여러개의 할일을 한번에 입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Pocket Info.에서 연동이 잘되면서 Today 캘린더에서 같이 보면서 우선순위를 퍼즐맞추듯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걷다가도 Siri로 간단한 내용을 입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계속 사용해보고 있다.
휴대폰시절에는 휴대폰이 바뀌면 기존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던 이름과 전화번호를 싱크해서 옮겼다.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방식인데, 핸드폰을 분실한 경우에는 대책이 없었다. 이제는 클라우드 방식으로 되어있어서 휴대폰 분실시 기존 휴대폰을 리셋시켜버리고 새로운 휴대폰에 로그인만 하면 주소록이 싱크가 된다. 실물에 대한 관리가 중요한 시절에서 비밀번호에 대한 관리가 중요한 시절로 넘어온 것이다.
주민등록번호가 개인 ID를 나타내듯 번호가 개인, 집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던 시절이 있었다. 집전화만 있었던 시절 > 개인 핸드폰번호로 구별되던 시절 > 이메일아이디로 구분되는 시절 로 단계별로 발전해 왔다. 스마트폰이 전화번호로만 구분된다면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에 불과하다. 이메일이라는 새로운 아이디를 구분해서 활용하는 순간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된다. 휴대폰을 개인용, 업무용 구분하듯 이메일도 개인용, 업무용 구분할 필요도 생겼다. iOS를 쓰고 있는데 여러개의 이메일 계정을 쓰더라도 연락처가 각각 동기화되어 한개로 잘 섞인다. 계정구분은 되어있지만 사용하는데 불편은 없다. 오히려 개인용 연락처에 전부 저장되어있던 연락처를 개인용,업무용 계정에 각각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메일을 기반으로 여러정보를 긁어오기 때문에 구분해서 활용하는 것이 효용이 높다.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서 입력하는 건 사무실에서는 시끄럽고, 책상에서는 어색하고 나중에 오타도 수정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움직이거나 걷다가 내가 어떤 공간으로 들어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기 전에 아이디어나 초안을 메모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다. 더구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이 글도 출근길에 걸어가면서 시리로 음성 텍스트 변환에서 메모하고, 포스팅한 글이다)
텍스트 정보를 처음 입력하기에는 기본노트가 제일 빠르다. iCloud에 자동 Sync되고 어디에서든 퇴고할 수 있기때문이다. 크롬에서 타자를 쭉 쳐나가니 인식속도가 늦어 한글 오타가 많이 나기는 하는데 옮겨서 작업하면 된다. 옮기는 행동에서 복습도 된다. 지식작업을 하기에 하도 편한 세상이라 때로는 의도적인 불편함의 단계를 만들어야 한다.
어?
라는 지점을 임의로 만들어야 기억에 남기도 쉽다. 정보가 많아지고 배우는게 많아졌다. Input은 많아졌지만 예전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가 기존 정보를 흐리게 만드는 비율이 높아진 것인데, 그래서 글로 쓰는게 더욱 중요해졌다. 어떤 단계에서든 의도적인 불편함과 반복을 만들지 않는다면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은 요원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78 Tools for Writing and Previewing Markdown. 간단리뷰
1번으로 나와있는 http://markable.in 를 써보니 StackEdit가 Dropbox, Google Drive 싱크지원되어 사용성이 더 나음.
2번 http://markdown-here.com 는 Gmail 에서 마크다운문법으로 작성하고 마우스 우클릭후 실행하면 본문내용이 서식적용된 디자인으로 변경되는 웹브라우저 익스텐션(크롬,파이어폭스,사파리 전부있음)
모바일, 윈도우, 맥, 브라우저등 다양한 마크다운 관련된 글쓰기 도구들을 모아놔서 클립.
😐 정작 StackEdit 와 HarooPad가 안보임.
잘 만들어진 앱은 좋은 책을 한권 읽는 것과 같다. via 캘린더 앱 리뷰 | #eWord.
이메일 앱 MailBox이후에 나오는 앱들은 전부 두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손가락의 운동이 터치와 길게 터치에서 좌우 짧게, 길게의 움직임이 더해졌다. MailBox가 뿌린 씨앗이 Boxer에서 완결된 느낌이다. 물론 기본 메일 앱도 훌륭하다. 아래는 각 앱별 장점만 간단 리뷰
결론적으로 한개를 추천하면 Boxer.
😐 기본이 되어있는 앱들은 어느순간 업데이트 되면서 더 좋아지기도 하기 때문에 계속 가져가고 있다.
잘 만들어진 앱은 좋은 책을 한권 읽는 것과 같다. 특히 생산성 관련 앱을 사용하다보면, 잘 만들어진 앱은 그 로직이 단순하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그간 접했던 캘린더 앱중 추천할만한 앱들 리뷰. 위의 3개는 무료이며 캘린더만 가능. 아래 3개는 유료이며(무료버젼들도 있음) 캘린더+할일관리 가능.
결론적으로 하나의 앱을 사겠다면 fantastical를 추천.
😐 나머지는 기분전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