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더라 #sorimoa

왜 그랬더라…

어떤 일은 나도 이해가 안갈 때가 있다. 하다보니 흘러온 것도 있고. 어떤 기제가 있었는데 그 기억을 잊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교 졸업한지 한참인 내가 왜 지금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까. 왜 그랬나. 시작점을 잊고 있었다가 이번에 자료 정리하면서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

2010년

처음 제안을 한게 2010년이었다. 그때만해도 동아리 게시판이라는게 하나 있었던 시절이었다. 2008년도 금융위기후 2009년 대학교 동아리들은 지원이 끊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1 그 힘든 상황에서도 공연이라는 명맥은 유지를 해가고 있었다.

2010년 1월 아이패드를 알게되었다. 잡스가 들고나온 아이패드에서, 아이폰이 뉴욕에서 사용되는 모습을 보고나서 세상이 바뀔것이라는 짐작을 하게되었다. 4월 아이패드를 사용해보게 되었고 같은해 9월에 아이폰을 광화문 KT 본점에서 수령하고 압구정 카페베네로 갔다. 그날 새로운 만남이 있었고 나는 #10월의하늘2 에 참여하게 되었다.

10월의 하늘

생각만으로 있었던 여러가지 아이디어는 회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과연 그 아이디어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의문이었고, 몇가지 어려운 기술적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10월의 하늘에서 트위터 계정(이때만 해도 페이스북이 흥하기 전 트위터가 흥했을 시절이다)을 만들고, 구글사이트와 구글문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되었다.

효과가 있다.

회사보다 비영리단체나 어떤 시스템이 없는 조직에서 적용 및 성과를 도출하는게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 효과를 위한 키포인트는 Open이었다. 얼마나 공개할 수 있는가가 효과의 정도였다.

그리고 참고 제안글을 작성했다.(동호회 커뮤니케이션 제안 2010년 – Google Drive)

적용

2010년 하반기에는 제안하는 정도에 그쳤다. 아직 부족한 부분들도 있었고, 나도 바빴다. 2011년에는 현장에서 접목했다. 문제가 있는건 걸리적 거리기 때문에 쉽게 알게되지만 문제를 예방하는 활동들은 눈에 쉬이 띄이지 않는다. 효과에 대해 약간 의문이 가던 시기에 기사한명이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 내용(몇가지 접목한)들이 없었으면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정리가 안됐을거에요.”

효과가 있다.

2011년 적용을 하고 직무가 바뀌게 되었다. 2012년 초에는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무리를 하면서 DNAS(Digital Neuron + A System)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은 항상 거부반응이 함께 있기 때문에 사람과 상황과 조직에 따라 그 적용의 정도를 달리할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제안글을 작성해서 보여줬다.(후배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줍시다.  via Somo OB. 120221) 새 직무로 넘어가기전에 3월 1일에 간단한 강연을 하기도 했지만 준비해서 내어놓는데 스스로 미숙함이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를 기반으로한 이메일, 문자, 카톡을 통한 주소록 정비가 한번 있었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예전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한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필요한건 OB회장이 모두 카톡방으로 모으는 일뿐이었다.(음.. 그 OB회장과 호흡을 좀 맞추려했는데 도미 해버리고 새 OB회장이 선출될줄은 몰랐다)

세번째

정말 무지막지하게 바쁜 나날을 함께 보내면서 준공을 마치고, 지방에 있는 현장에 파견을 나갔다가 다시 본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본사로 들어와서 보니 예전에 뿌렸던 씨앗이 각 부서에서 소화가 가능한 정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들 말은 안했지만 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효과가 있다.

다시 한번 시도를 하게되었다. 기존 주소록과 온라인 주소록이 상충되기도 해서 인계를 제대로 해줘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장과 총무를 만났는데 컴퓨터학과를 전공한 의욕넘치는 총무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YB는 해야할 일들이 이것저것 많았다. 세번째도 성과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는데, 이제 한국인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네번째

동생일 겪으면서 너무 많은 동아리 사람들이 와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시기는 미루어 두고 있었는데 12월에 사람을 만나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후배들도 만나기로 했다. 네번째 달라진 점은 중심을 YB에서 OB로 변경하기로 한 점이다.

한명만 만나려했다가 상황이 아닌것 같아 더 알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만남보다도 그 과정자체가 알려주는 주 내용이었다. 모인 사람도 어느정도 되었고, 이해도 된것 같아 이번에는 될것 같았지만 역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점들이 만들어 졌다. 블로그 2개. 이젠 그 블로그에 있는 내용만 계속 반복하면 된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들이 있다. 그 시간들에 맞추어서 정보를 생성하는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내 상황도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선은 내놓는 것이 필요했고 지금 돌아보면 그간 시도했던 노력들이 있어서 이렇게 단기간에 정리가 될 수 있기도 했다.3 안되는건 안되는거고.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 알게되었다. 이번에는 앨범을 만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다섯번째

매주 토요일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가다보면 같이 걸어갈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하게될까.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덕분에 공부할것, 정리할 것들을 진도 나갈 수 있었다. 다섯번째 시도에서 중심으로 하는것은 이제 내가 처음부터 알려주지는 않는다는것이다. 지금 정리된 양도 많다. 정리된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소화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소화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 때가 언제일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8년 금융위기같은 상황이 또 오기 전에 그 시기가 먼저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바라는 모습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겠어. 외계어 같아.

알것 같았던 친구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시 어려운가보다. 바라는 모습으로 마무리 지어야 겠다.

  1. 동아리의 행사가 있으면 바로 공지되고 전파된다.
  2. 노래, 영상이 온라인의 공간에 있어서 보고싶을때 언제든지 볼 수 있다.
  3. 공연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Mix되면서 어울려진다.
  4. 동아리의 블로그나 영상채널이 흥하게 된다면 홍보,스폰서를 온라인 광고로 받을 수 있다.
  5. 2번의 내용을 가다듬어서 컨텐츠화 할 수 있다.
  6. “온라인”도 하나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잘 소화했으면 좋겠다.
  7. 지속가능한 운영수익이 가능한 동아리가 된다. 이는 YB만으로는 안된다 OB가 Producer가 될때 가능하다.

노래 동아리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그 노래의 정도가 컨텐츠가 된다.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과 준비하고 난 다음도 컨텐츠가 된다.

선배의 경험과 후배의 궁금증이 연결될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된다. 돌아보면 우린 얼마나 많은 삽질과 뻘짓을 하고 지냈는가. 경험을 듣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 이것도 어렵냐…

2014년의 단어

한해를 대표하는 단어를 선택해본다. 2012년부터1 정기적으로 해오던 일인데 어떤 이정표를 세운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관점을 선사한다. 연초에 선택한 단어와 한해가 지나고 난 후에 달라지는 단어가 있을때도 있지만2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기 때문에 좋은 마일스톤들이 된다.

  • 2010 배움
  • 2011 실천과 배려
  • 2012 상호작용
  • 2013 반복

2014년은  선택이 적당하겠다 생각했는데 스티브잡스, 월터아이작슨, 폴 그레이험의 영상3을 보던 중간에 Count가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다는 것, 선택한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 일을 숫자로 셀수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14 COUNT


  1. 비움을 위해 아침 차한잔, “쓸데없는 짓이야”라고 말하기, 순간에 충실하기등을 다짐했었다. e blogspot: 2012년의 결심 11.12.31. 
  2. 결심할때는 비움이었는데 한해를 마치고 나니 상호작용이 적당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어색한 단어이긴하지만. Interactive 라고 하면 좀 나아보이나.  2013 單語 | #eWord 13.01.03. 
  3.  Mikey Lee – YouTube. Inspiration 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24편의 영상이 있다. 지인들에게 추천하다가 내가 다 보게되었다. 돕고자 하는 마음이 또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2013 in review

글의 의미는 두가지에서 나온다. 내용. 그 , 순간을 남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내용을 전달 할 수 있게 해주는데 있다. 라는 독자를 포함해서.

순간이라는 시간속성을 위해서는 그 시점을 지켜야 하는 것이고, 내용이라는 관점에서는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내용을 알차게 해서 내놓아야 한다. 그간 그 시기에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부족하더라도 단어 몇개만으로도 글을 발행했었다. 부족하더라도 퇴고라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돌아본 글들

다시 돌아본 글들은 내가 보기에도 다시 보기 불편함이 있었고, 오히려 신경을 쓴 포스팅 마저도 그 글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런 부족함이 있는 반면에, 부족하더라도 발행된 글들이 발행되지 않고 잠자고 있는 글들보다 훨씬 나았다. 다시 사용될 수 있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완성도가 높아진다 해도, 그때 그 시점에 발행하지 않으면 왠지 계속 Draft상태에 머무르는게 블로그 글의 속성인듯 싶다.

그래서 2014년에는 어떤 글을 쓸것인가.  읽히지 않는 글은 생명력 없는 글이다. 생명력 있고 의미있는 글을 쓰겠다 다짐해본다.

 2013 Views

작년 한해 2만번의 View가 있었는데, 이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7회 전석 매진과 같은 숫자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보여지는 순위는 글의 내용보다 추천이 되었는지 여부가 조회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The Books는 책의 미래에 대해 글을 나중에 쓰려다 미리 안내가 되는바람에 1위의 영예를 얻었는데 그 내용이라는게 민망하기 그지 없다.  (책의 미래에 대해서는 다시 글을 쓸 예정이다.)

2014는 새로운 맥북과 함께 블로깅을 할 예정이고, 스타일도 꽤 달라질 것 같다. 생명력이라는 스타일을 입을 수 있도록 걸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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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re you thinking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아침 단상에서 한꼭지를 가져오다.

20131230-212543.jpg

12-30-2013 06:43AM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공간과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공간은 관계를 만든다. 공간은 스스로를 마주보게 하기도 하고, 원치않는 만남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만남은 내가 경멸하는 인간과 같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시간은 관리될 수 없다.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시간에 대한 태도와 일의 우선순위다. 시간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태도와 일의 순서를 정함에 따라 같은 시간범위에서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세포의 사이클을 빠르게 유지하는 것이 시간을 길게 만들수 있다. 정해져 있는 시간에 세포의 사이클 횟수가 시간의 속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어릴때 하루가 길고 나이가 들면서(세포의 사이클이 느려지면서) 하루가 짧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하고 작은 성공들을 즐기고 모으면 뻘짓을 할 가능성을 줄여준다.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전부 잘하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삽질을 줄일 수 있다.

일이 곪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에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일의 결과에 대한 기대치는 커지게 마련이다. 빨리 마치는 것 만으로도 작은 노력으로 일을 처리될수 있게 한다. (두가지 예외가 있다. 때론 빠른 피드백을 줘도 시시콜콜 성과를 못보고 사소한 일에 목매는 사람을 만나는 불운을 만날수고 있긴 하다는 것. 둘째는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는 것. 둘다 경험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자면, 공간의 선택은 관계를 정의한다. 우선순서를 선택하는 것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수 있게한다. 관계는 나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고,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현재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일이 곪지 않게 하는것. 그리고 공간을 선택하는 것이 내가 하루하루 선택해야 할 바다.

선택이 하루를 그리고 나를 조각한다.

2013년 12월 29일

2013년도 이틀 남았다. 이틀후면 다시 일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일년이 온전히 남아있을지 어떻게 사용할수 있을지는 지나보아야지 알것이다. 쓸수 있는 글도 많고 써야할 글도 많지만 오늘은 그냥 손가락에 글을 맡겨보련다.

2013년의 의미

몇년간 혼신을 다했던 현장을 2월에 마쳤다. 3월에는 전주에 있는 현장으로 내려가서 준공을 돕고 5월에는 본사로 올라왔다. 같은 직무도 경험에 따라 보이는 것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처음 보였던 개선과제들을 아직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는 있지만 준비하고 있으니 언제고 때가 올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씩 하면서, 하루기적을 만들면서 기다릴뿐이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특히 7월의 시간들이 소중했고, 8월은 아팠으며, 9월의 반전은 사람의 본질에 대한 실망을 갖게 했다. 혹여나 실수로 판단한건 아닐까 생각했으나 하나 둘씩 사실이 밝혀지는 10월이 있었고, 스스로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균형 잃은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 11월은 배움의 시간을 계속 가졌었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끈을 놓지 않기위해 12월은 여러 만남을 가졌다. 그 사람도 다른사람도, 동기회도, 친구들도, 송년회도, 저번주 금요일 만남을 마지막으로 여러 만남은 끝을 맺었다.

글로 남기는 일상

일상은 반복되지만 글로 남기는 일상과 그렇지 않은 일상은 조금 차이가 난다. 글로 남기지 않은 일상은 왠지 쌓아져 있긴해도 다듬어져 있지 않은 모습이랄까. 오늘 일상을 글로 남겨본다. 그간 피로가 쌓여서 인지 눈가에 울긋불긋한 열꽃이 피어있었으나 푹 쉬고나니 많이 가라앉았다. 제대로 걷고, 숨쉬고, 잠자기만 해도 만병이 다스려질것같다. 걷고, 숨쉬고, 잠자기를 제대로 못해서 생기는 병도 많다.

테스트하고 배우고. 애플TV의 매커니즘은 예상했던대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꿀것이다. 크롬캐스트도 그렇고 넷플릭스도 그렇고 어느 순간에 한국의 미디어 소비방식은 바뀔것…같지 않다. 바쁘기 때문에 바뀌지를 못한다. 팍팍하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바뀔수 있는 집단군과 바뀌지 않는 집단군으로 나뉜다. 그렇게 나뉘게 될 것이다.

요즘 언론과 미디어는 사회를 투명하게 비추지 못한다. 환자를 진단하는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못할때 의사는 제대로 진료하지 못한다. 사회가 점점 멍들어가다 못해 곪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때론 곪아야 바뀔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픔들이 너무 크다.

전선없이 전기가 충전가능한 TED를 보았다. 애플TV와 같이 생활패턴을 바꿀것이다. 2009년 영상이니 곧 상용화 될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건설회사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항상 생각한다. 상당히 긍정적이나 실현에는 몇가지 장애들이 있다. 그렇기에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때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간단하지만) 실행하는데 몇배더 불필요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땐 공부하고 글쓰는게 더 낫다.

과학에 대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것은 3가지입니다. 시공, 원자, 세포 에요.

“시공은 Space+Time이 아닌 Spacetime 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여기에 해당하구요. 지질학을 공부하는 것도 원소를 원자단으로 생각하면 쉽게 해결이 되요. 세포는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면 뇌과학은 쉽게 해결이됩니다.”

비즈니스 영어에 대한 좋은 리소스를 모아놓은 글, 치유와 글쓰기에 대한 글이 있었다. 좋은 내용은 많다. 필요한 것은 쉽게 요약하고 반복할수 있는 능력과 영어. 덕분에 TED 영상도 오랫만에 다시 접했다. 못보았던 인기영상들이 있었다.

The Power of vulnerabiliy : 취약성을 받아들일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Breakdown에 대한 위트있는 프리젠테이션 사용, 재미있는 진행이 인상적. The body language shapes who you are : 2분간 자신있는 포즈를 취하는 것 만으로도 자신감을 더욱 가지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울수 있습니다.테스토스테론을 높이고 코티졸을 낮출수 있습니다.

너는 해야할 모든 강연을 다 마치게 될거고, 그저 계속해서 해내기만하면 돼

The happy secret to better work : 긍정적인 생각이 나를 돕는다. 매일 2분 감사한 일을 3가지씩 21일간 적는 것만으로도 도파민 분비를 도와 나를 돕는다. 웃다보면 배우게 되는 강연.1

맥 알프레드에 대해 더 알게됨. 맥에 대해 조금 더 익숙해지면 엄청난 생산성 향상이 가능할듯.

이메일 보내려고 생각했던 3통을 오늘 다 보냄.

친구와 페이스타임. 이메일에 대한 회신들.

적고보니

각각 하나씩 포스팅을 할 꺼리들이 되는 내용들인데 이렇게 적지 않았으면 왠지 짐으로 남아있으면서 글로 쓰지도 못했을것이다. 형호글을 못 쓰긴 했는데 뭐… 좀더 기다려라 형호야. rehho의 진실로 할지 H2O의 진실로 할지도 생각중이다.

못한것도 있지만 참 많은걸 했구나. 이틀. 2013년 남은 이틀을 알차게 그리고 남은 2014년 이후의 날들도 의미있게 흘려보내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Part I. 한달

2013년 8월 28일 (수) 23:30

형호는 어떤 사람이었니

형호의 형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에요.

질문에 그녀는 웃음지으며 이야기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사람… 저를 너무 사랑해준 사람이요.

동생이 떠난 다음날 23시경 찾아온 동생의 동아리 후배는 동생이 얼마나 좋은 선배였는지를 알려주었다. 내가 보는 동생과 다른 사람이 보는 동생은 조금 달랐다. 선배로서, 친구로서의 동생. 유머가 있고 젠틀한 선배였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다른사람들이 보는 동생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자리에 있던 동생 친구들에게 묻고, 그녀(동생의 아내)가 생각하는 동생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단순하고 추상적인 답은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웠지만 결국 그 두개의 문장과 웃음이 전부였다.

경과

동생은 암으로 2년 반동안 고생을 했었다. 2011년 1월 설암수술후 4월까지 본가에서 요양하고, 7월 검진때 폐암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로부터 2년동안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2년반 기간동안 본가에서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지낸 기간이 대부분이었고, 그래도 집을 오래 비우면 안된다고 서울 본인집에 돌아가서 지낸 기간이 9개월 가량이었다. 하지만 폐암이라는 병은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몸이 꺾이면서 계단 내려가듯 안좋아지는 병이었고 그런 상태가 계속 되었다.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에 있을때는 살이 붙다가도, 서울 본인 집으로만 가면 몸이 안좋아져서 다시 본가로 들어오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부모님은 걱정이 되셔서 동생이 서울집에 있더라도 경기도에서 음식을 해서 집으로 나르는 생활을 계속하셨다. 동생이 음식을 챙기는데 요령이 부족한 어려움이 있었고, 직장을 다니는 (동생의) 아내가 챙겨주기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회사일은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 같은데도, 집안일은 그 손쓰임이 다른지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이 청소하고 음식을 챙기는 생활이었다. 한달에 한번정도 있는 병원진료도 동생의 아내는 회사원이라 가지 못해서 항상 형수(내 아내)와 함께 병원을 갔었다.

폐암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지인들은 “왜 서울에 있어? 공기 좋은데로 짐싸서 가야지”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의 직업이 서울에 있어 본인만 갈수도 없다 했었다. 성당에서 지원하는 요양센타에서 한달씩 시간을 보내기는 했고,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올때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폐암환자의 치료란 결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암의 치료란 영양분과 공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동생은 항상 비용이 적게드는 방법으로 치료방법을 잡았다. 그래서 신약도 적용하게 되었고, 유명 요양병원도 지방에서 숙식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가지 못했다. 당장 항암 치료할때나 각종 검진비용에 대한 비용도 보험이 있기는 했지만 비용이 전부 인정되지 않아 가계가 어렵다 했었다. (동생의) 아내는 은행원이었기 때문에 세부사항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동생은 암치료 방법을 찾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모든 보험금 청구 및 세부사항에 대한 관리는 그녀가 담당했었다.

2012년 가을경 동생은 아내도 아내의 길을 찾고, 본인도 본인의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혼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 후 에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 형수(내 아내)가 물었다. “저번에 이야기한 것 어떻게 된거야?” “이야기 했었는데요. 아내가 저 살려보고 싶데요. 그래서 안헤어지기로 했어요.” 라고 동생이 답했다.

그건 네 희생인데?

형수가  말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나는 그들이 그렇게 정했다면 우리가 간섭할 수 없는 문제라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쉬운 마음이 컸다. 사람의 말이 그러하다면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남아있는 건 말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보고 배운바가 있어야 하는데 보고 배우지 못했다면 말과 마음이 그러하더라도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음식과 환경)을 해주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에서 필요한것만 한다는 것.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어떤 사람인지 알게된다는 점.

미안한 마음

동생은 본인이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형(나)이나 부모님,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해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했다. 암과 돈. 두마리 토끼를 항상 같이 생각해야 했었던 것도 30대 중반 암에 걸린 가장에게는 큰 짐이었으리라. (동생의 장인어른은 그녀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고, 그때 장모님이 간병하느라 우울증이 있어 알리지 않는게 낫겠다 했었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본인과 그 아내가 그렇게 이야기해서 더 강요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생의 처가집은 설암수술은 알았지만 2년동안 동생의 폐암발병여부에 대해 모르다가 동생의 여명이 얼마남지 않음을 알린 2013.7.29 경 그 내용을 동생의 아내를 통해 알았다)

2013년 7월 27일(토)

동생이 새벽에 급하게 찾았다. 병원으로 달려간 형에게 말했다.

형 나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진작 이렇게 마음먹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내가 항상 이렇게 늦다.

퉁퉁 부어있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부은 얼굴도 저렇게 환하게 보일수 있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4인 병실이 불편해서 1인실로 옮겼다. 짐을 옮기고 몇가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갑자기 동생이 침대위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뭐야. 뭐야. 왜 이래. 왜 괜찮아져. 이러면 어쩌라고.

그리고는 침대 안전바를 흔들면서 오열했다.

아 어쩌라고 괜찮아져. 나 돈도 없는데. 1인실에서 이러면 어떻게 해.

그 놈의 돈이 뭔지. 저놈 자기 목숨이 경각에 있는데도 저렇게 돈때문에 걱정하는구나. 같이 울었다. 그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몸 상태가 다시 괜찮아진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항암치료는 더 받지 않기. 그리고 다시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였다.

그래 그러는게 맞겠어. 그냥 난 오늘을 즐길래.

눈을 감고 침대에 앉아 음악을 듣는것 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동생이 말했다.

폐암이 커져있다는 것은 말을 편히 할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원래 발병했던 설암(두경부암)도 절제해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곳도 암이 퍼져있어서 이야기나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했다.

형. 사람들이 내가 괜찮아 보여서 그냥 알아듣는다 생각하고 말 하곤 하는데 사실 오른쪽 잘 안들려. 그리고 이해하려고 집중해야지 이해돼. 그렇게 듣는거야.

그런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동생에게 내가 가진 컨텐츠나 방법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네가 가르쳐준 이야기들이 큰 자양분이 됐어. 걱정하지마. 다 잘될거야.

그리고 매일매일 퇴근후 병원에 들러 동생과 함께한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결국 정확히 한달후 동생은 떠났다.

8월 9일(금) – 퇴원가능

합병증이 치료되어 퇴원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금 퇴원하지 못하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동생의 몸상태는 걸음과 대소변을 혼자 해결할수 없는 상태여서 집에 준비가 필요하다 했다. 동생의 아내는 휴직상태로 어머니와 주야간을 번갈아가면서 간병을 하고 있었다.

8월 12일(월) 사돈총각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동생의 아내가 전날 이야기했다. 월요일 저녁에 만났다. 정중한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정말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저희가 병원에 가도 도움될게 없어서 안가고 있습니다.

결국 요점은 퇴원후 여동생 혼자 있을때 형호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와 현재 휴직상태인데 경제적인 부분을 도와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사람이란게 그렇구나… 결국 동생을 위하는 이야기구나.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어련히 알아서 할까… 저 말 하려고 오늘 보자고 한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이 시켜서 하는것처럼 느껴져서 매일 병원을 가다가 월요일 저녁이후 화,수는 가지 않았다. 퇴원만 하면 되고, 야간은 동생의 아내, 주간은 어머니가 교대로 간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월 15일(목) 아직 퇴원전이다. 병원비 및 1인실 비용은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병원에 찾아가 이야기했다. 동생의 아내도 오라했지만 전날 동생 병간호 하느라 잠을 못자서 지금 못오고 저녁 늦게 올수 있다 했다.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퇴원하지 않으면 집에도 못 가보고 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형도 생각해 달라는 것.

내가 집에 도움이 될 나이인데 지금 이렇게 짐이 되어버렸어. 돈벌때 엄니한테 형한테 뭘 해줄수 있겠다 생각해서 기분 정말 좋았는데 얼마 벌지도 못하고 이렇게 되어버렸어.

오열하는 동생을 보며 참 슬펐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그리고 이야기 했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너는 나에게 좋은 동생이라고, 미안해 말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는 날이었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고. 약에 대한 준비시간도 필요하니 내일 퇴원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몸 상태에 따라 금요일 아니면 토요일에 퇴원하기로 했다.  동생은 다음날인 금요일 퇴원했다.

8월 16일(금) 집으로

퇴원후 저녁때 어머니가 서울집에 같이 주무시고 낮에 집에 다녀오시는 간병생활이 시작되었다. 동생의 아내는 첫날 음식 장을 보고 더이상 장을 보지 않았다. 음식준비는 간병을 위해 마포에서 잠을 자고, 낮에 일산 집에 다녀오시는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고 (나중에) 알았다. 왜 장을 안보냐는 어머니의 말에 일주일에 한번 장본다는 며느리의 대답이 있었다고 한다. 퇴원후 떠나기 전까지 10일이 있었기 때문에 말만 하는 사람과 행동을 같이 보이는 사람이 명확히 구분되었다. 동생의 처가집에서도 정말 마음만 굴뚝같았는지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었다.

...

8월 25일(일)

동생집에 방문을 했다. 동생의 아내가 말했다.

그래도 죽기는 싫은가봐요. 이대로는 못산다고 같이 떨어져 죽자고 했는데 대답안하더라구요.

동생은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말하기도 어려운상태였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힘드니까 그냥 하는 이야기지 라며 웃으며 돌리는 이야기로.

정말이에요. 9층이면 죽지않고 다치기만 할까. 아래 나무 없나 보고 그랬어요.

확인하듯 이야기한다. 많이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래도 좀 심했다. 동생 마음은 어떨까.

8월 27일(화)

무더운 여름날 동생은 거실쇼파에 계속 있었다. 거동이 불편했고, 두명이 간호하기에 방은 비좁았다.  거실 쇼파에서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불편한 숨을 이리 저리 고르고 있었다.

엄니 저 아래로 내려줘요.

처음으로 바닥에 앉게 해달라 했다. 동생의 아내는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고, 동생이 바닥에 내려오며 엄니와 마주보고 앉는 순간 퍼뜩 엄마의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말했다.

형호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떠나 간단다. 너는 좀 빨리 가는 것 뿐이야. 그러니 너무 아쉬워 말아라 알았지?

모자(母子)는 그렇게 앉아서 눈을 마주 보았다. 그때의 깨끗한 흰자위, 맑은 눈빛을 어머니는 두고두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마주보다 갑자기 숨을 후욱하고 크게 들이마시더니 뒤로 쓰러졌다.

동생은

그렇게

떠나갔다.

3년전의 기록들

담벼락을 뒤돌아 보았다. 나는 그동안 어떤 글을 써왔었나. 어떤 일이 있었나 되돌아 보고 싶었다.  바쁜 생활에 간간히 친구,지인들과 농담할수 있는 공간이었고, 만나진 못하더라도 같은 생각을 나눌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눈다 보다는 찾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을까. 2011년 1월. 그때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구나.  2010-2011경에는 전부를 이야기했더니 어렵다 해서 그 다음 부터는 가능한 부분만 이야기한다. 너무 간단하게 이야기했나. 다들 가까이는 가는데 풍덩 들어가지는 않는다.  몇몇 조언을 했던 멘티 한명이 다가와서 이야기한다. “다들 왜? 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큰 그림을 한번 설명해주시는건 어떨까요?” 새로운 단어가 많아지면 다들 어려워한다고 답했다. “그래도 이제는 한번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고민중이다.

 2011. 1. 2  씨앗과 발자욱들

SNS. 저는 친구 찾기로만 이해되는 상황이 조금 아쉽더군요. Human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상호 조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의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Know Can Do 와 SNS. 비움과 배려가 저의 2011년 KEYWORD입니다. via 록 담벼락 – 2009 년에 읽었던 책입니다. 2011.1.2  

 2011. 1. 13

1월초에 윗 글을 적을 때만해도 동생이 암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알게 된 후에 찍은 지하철역 사진이다.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길이었다. 전학가기전에 집은 잠원동, 학교는 합정동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형과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은 매번 지하철을 타고 2호선과 3호선을 다녔다.

2호선과 3호선의 교차점. 벌써 25년전의 이야기구나.

http://instagram.com/p/_el0/

2011. 7월

동생이 폐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적은 글이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어떤 글은 그때의 나를 마주하게 한다.

 내 마음을 누가 알까. 네 마음을 누가 알꼬

페이스북 메모

누구나 사용하면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것과 같아졌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균형된 감각을 기르기에는 부족하지만 약한고리를 연결하고, 사람을 발견하고, 기록을 남기기에는 매우 유용하다. 3년전을 되돌아보면서 그때의 글들을 꺼내서 포스팅해보는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부족으로 단어만 남기거나, 모르겠다는 미완의 글도 많지만 그 글들이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을 몰랐는지를 모르는 시점이 오기 때문에 안다고 남기는 것 만큼 모르겠다는 기록도 중요하다.

  • 담벼락에서 의미있는 글 발췌: Using facebook like clip 130223| #eWord.
  • Facebook 에 대한 단상 130303| #eWord.
  • 페이스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 일까 : 명함, 관계,한계,효용,비효용,쉼표 메세지가 전달된 수치가 Like 로 계량화가 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like를  활용하는 사람들과 like 하지 않은 사람들에 주의를 기울일때 Next가 있을 것이다.via Facebook 120805 | #eWord.
  • 트위터를 통해 행동경제학과 자연과학에 관심있는 분들과 연결될 수 있었으며, 요청(멘션)에 의해 책을 추천받기도 했다. 그 추천받은 책들은 내가 묻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고, 그 덕에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via 페이스북 2013년 한국 단상.  13.10. 4| #eWord.

글을 쓰는 이유

내(@zenandmotor)가 블로그를 한지도 이제 6년이 되었고 오늘은 글쓰기라는 주제로 몇자 써볼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게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데라고 묻고 답을 듣기 위해서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글의 주제가 생기고 그걸 쓰냐는 것이다. 흔한 대답이고 사소한 기술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노트를 하는 것이다. 요점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 지식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문체다. 같은 지식을 나열해도 전혀 다른 설득력을 가지게 하며 같은 감상을 쓴것같은데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좀 더 심층적인 문제는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글쓰기를 하게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내 경험에 따르면 이유를 처음에는 명확히 모른다. 글을 쓰다가 보면서, 일반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많은 글을 썼고 하나의 질문으로 모여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질문이 조금더 단순해지고 자신의 여러행동이 좀 더 잘 연결이 되면 될수록 오히려 좀 더 많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평범해 보이던 것들이 조금은 더 달라보인다.

뭘 쓸지 많이 생각해 두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 생각한 다음에는 오히려 좀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묻는다. “세상에는 이런 질문이 있는데 말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럼 손가락이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쓰기 위해 쓰는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스스로 읽는 첫번째 독자가 되기 위해 쓴다. 아 그런 거였군 하고 배우기 위해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쓴다. 천개 이상의 글을 썼던 이유는 그때문이다. -출처: 블로그 글쓰기 나는 이렇게 한다.

내(@ehrok)가 글을 쓰게된 이유

노트를 적는 습관은 일을 하다가 어느새 몸에 배게 되었다. 좀 더 잘하기 위해서 계속 생각하다가 적다가를 반복했다. 수첩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었지만 수첩과 스마트폰이 주는 이점과 이야기는 약간씩 다르다.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배울점을 생각하고 좀 더 나은 점을 생각하다보니 할 이야기가 하나둘씩 쌓여 갔다.

처음의 블로그 글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썼다. How에 대한 글을 쓰면 맥락에 따라서 활용할 수가 있으니까. 쓰다보니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작성한 글이 온전히 나를 향함을 깨달았다. 글을 쓰다보면 그 글이 나에게 알려준다. 이런게 있다고 .

문자는 고정된 운동이다.

생각만 해서는 멈추어지지 않는다.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고 도해로 단순화하다보면 어느새 생각이라는 운동이 고정되고 형상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운동은 또다른 운동을 불러온다. 내 생각일수도 있고, 타인의 생각일 수 도 있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도 타인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나도 그런 글에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알게된 사실이다.

자신의 뇌를 인지할수 있는 기관은 없다. 내가 나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나를 볼수 있게 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볼 수 있을때 나를 알게된다. 이것이 쓰기의 가장 큰 효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쓴다.

어느 순간에 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이 열려야 정보가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보여주는 형상(문자,그림,도해)들이 수신자의 대뇌피질에 있는 정보와 시냅스가 될때 그 형상은 의미를 가질수 있다.  수신자가 시냅스될 정보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그 글은 공허한 울림에 그칠 뿐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감정이라는 문이 열려야 한다.  그 방법은 쓰는 이유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가치있는 글은 생명력을 가지고 그 생명력이 감정이라는 문을 열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력을 지닌 글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나는 계속 쓴다.

Gravity와 존재

그래비티 리뷰

가공할 무(無)가 불러오는 극단적 단절에 마주하여 그녀가 매달리는 건 목소리다. 응답이야말로, 주고 받는 대화야말로 강력한 초월성 앞에서 그녀가 ‘거기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야 비로소, 라이언은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더 정확히 말하여 ‘홀로 죽어가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때 맷의 환상이 나타나 보드카를 한모금 쭉 들이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여긴 말야, 혼자 있기 좋을 만큼 조용하고 눈 감으면 세상사도 잊혀지지. 상처 줄 사람도 없고 인생은 별 게 없어. 그래도, 계속 가기로 했다면 끝까지 가 봐야지.

상처의 흔적은, 다시 말해, 곧 관계의 흔적이다. 라이언은 관계의 기억을 쫓는다. 그녀가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계속 가기로 했다면 끝까지 가야만 한다. 이 여정이 진정 끝이 날 때까지 – 출처: Suhkyung Selene Kim Facebook 그래비티 리뷰

어떤 글은 묻혀있던 기억의 흔적을 꺼내온다.

기억의 흔적

2013년 7월 27일 병원으로 빨리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토요일 아침 병원에 도착한 나에게 동생이 이야기했다. “형 나 더이상 안되겠어.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내가 항상 이렇게 늦다.” 4일전 의사에게서 들은 여명이 얼마 안남았다는 이야기를 전했을때만해도 “형 똑바로 알고 이야기해. 나 치료하는 방향잡는데 헷갈리게 하지마”라며 혼내던 동생이었다. 토요일 새벽에 숨이 넘어갈뻔 했다고 한다. 다행히 상황이 조금 호전되고 나서 이 이야기를 했다.

숨이 넘어갈뻔하며 죽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무말도 못하고 이렇게 간다는게 가장 두려웠어.

그리고 나는 동생과 약속했다. 못다한 이야기들을 완성해주기로.

11월 24일 일요일.

동생이 떠난지 3달이 다 되어간다. 글을 적다보니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몇가지들도 같이 생각났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차이가 크면 불행한거야.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그게 행복한 삶이야.

존재는 관계에서 존재하고, 가치란 그 사이에서 생겨난다.

시작

오늘을 기억하라 했다. 팀원 몇몇에게.

2013.10.7 (월)

협업체제를 구축하기로 시작한 날이고, 언젠가 오늘을 회상할 날이 올것이라고.

 

그냥 흘려들을 것을 안다.

그래서 이렇게 남긴다.

 

사실 나도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답을 내고 접근 하는것이 아니라 답을 만들어가는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