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imoa OB 자료정리

어떤 일들은 정리가 한번에 안되는 일들이 있다. 시간이 많이 들어갈 수록, 심혈을 기울일 수록 그러한데 이번 일이 특히 그랬다. 더 이상 진전하지 않고 마무리 하기로 했기 때문에 점을 제대로 찍어놔야한다. 이 글은 그런 내용이다.

12월이 한달 지나고 났을때 쯤 진전이 잘 안되고 있음을 느꼈다. 왜? 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한 시점 이었다.그래서 편지를 적게되었다1. 12월은 만나면서 진행되었다면, 1월은 만나지 않고 진행되었다. 왜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읽은 사람에게는 감흥을 주어서 1월도 계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피드백이 너무 적어서 선배에게 과연 이 방법이 맞는지도 물었고, 그에 대해 답도 받아볼 수 있었다2. 그리고 그 사례들로 몇몇 사진과 영상을 사례로 남겼다3. 내가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걸 보는 타인의 손끝에서 같은 일이 일어날때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하기는 비교적 쉽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기록들을 말로 설명하고 하게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기존 설명이 부족해서 추가로 작성해보기도 하고4, 잘 따라오는 사람들과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여기서 착각하지 않아야 할 점은 이 일은 2명만 있으면 된다는 점이다. 단, 2명을 알려주나 여러명을 알려주나 들어가는 노력은 같아서, (그리고 도움이 될것 같아서) 확대한 것이다5. 그리고 예전의 실패를 비추어볼때 YB가 중심이 되기에는 이해도와 연속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OB가 프로듀서로서 중심이 되는 것이다.

“왜 그랬더라” 와 “2개월 그리고 2년” 두개의 글이 가장 중심이 되는 글이라 하겠다. 나머지는 나중을 위한 기록으로 이곳에 남기고 마무리 한다.


  1.  왜 그랬더라 | #eWord 
  2.  #sorimoa — 자료를 채우고 디지탈화하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via @kkonal 
  3.  #sorimoa — 손그림 주소록, #sorimoa – 20주년 DVD, #sorimoa — Man in the mirror 노래영상 121024 
  4.  #sorimoa — 초간단 안내서#sorimoa — Facebook Event 지정방법 – 컴퓨터에서 접속할 때만 가능., #sorimoa — 마크다운, #sOBs- CD 프로젝트 2014에 대한 논의 
  5. 사실은 OB회장이 컴퓨터에 친숙하지 않은 것 같아서 혼자에게만 알려주면 그냥 또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그랬다. 

왜 그랬더라 #sorimoa

왜 그랬더라…

어떤 일은 나도 이해가 안갈 때가 있다. 하다보니 흘러온 것도 있고. 어떤 기제가 있었는데 그 기억을 잊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교 졸업한지 한참인 내가 왜 지금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까. 왜 그랬나. 시작점을 잊고 있었다가 이번에 자료 정리하면서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

2010년

처음 제안을 한게 2010년이었다. 그때만해도 동아리 게시판이라는게 하나 있었던 시절이었다. 2008년도 금융위기후 2009년 대학교 동아리들은 지원이 끊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1 그 힘든 상황에서도 공연이라는 명맥은 유지를 해가고 있었다.

2010년 1월 아이패드를 알게되었다. 잡스가 들고나온 아이패드에서, 아이폰이 뉴욕에서 사용되는 모습을 보고나서 세상이 바뀔것이라는 짐작을 하게되었다. 4월 아이패드를 사용해보게 되었고 같은해 9월에 아이폰을 광화문 KT 본점에서 수령하고 압구정 카페베네로 갔다. 그날 새로운 만남이 있었고 나는 #10월의하늘2 에 참여하게 되었다.

10월의 하늘

생각만으로 있었던 여러가지 아이디어는 회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과연 그 아이디어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의문이었고, 몇가지 어려운 기술적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10월의 하늘에서 트위터 계정(이때만 해도 페이스북이 흥하기 전 트위터가 흥했을 시절이다)을 만들고, 구글사이트와 구글문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되었다.

효과가 있다.

회사보다 비영리단체나 어떤 시스템이 없는 조직에서 적용 및 성과를 도출하는게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 효과를 위한 키포인트는 Open이었다. 얼마나 공개할 수 있는가가 효과의 정도였다.

그리고 참고 제안글을 작성했다.(동호회 커뮤니케이션 제안 2010년 – Google Drive)

적용

2010년 하반기에는 제안하는 정도에 그쳤다. 아직 부족한 부분들도 있었고, 나도 바빴다. 2011년에는 현장에서 접목했다. 문제가 있는건 걸리적 거리기 때문에 쉽게 알게되지만 문제를 예방하는 활동들은 눈에 쉬이 띄이지 않는다. 효과에 대해 약간 의문이 가던 시기에 기사한명이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 내용(몇가지 접목한)들이 없었으면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정리가 안됐을거에요.”

효과가 있다.

2011년 적용을 하고 직무가 바뀌게 되었다. 2012년 초에는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무리를 하면서 DNAS(Digital Neuron + A System)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은 항상 거부반응이 함께 있기 때문에 사람과 상황과 조직에 따라 그 적용의 정도를 달리할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제안글을 작성해서 보여줬다.(후배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줍시다.  via Somo OB. 120221) 새 직무로 넘어가기전에 3월 1일에 간단한 강연을 하기도 했지만 준비해서 내어놓는데 스스로 미숙함이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를 기반으로한 이메일, 문자, 카톡을 통한 주소록 정비가 한번 있었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예전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한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필요한건 OB회장이 모두 카톡방으로 모으는 일뿐이었다.(음.. 그 OB회장과 호흡을 좀 맞추려했는데 도미 해버리고 새 OB회장이 선출될줄은 몰랐다)

세번째

정말 무지막지하게 바쁜 나날을 함께 보내면서 준공을 마치고, 지방에 있는 현장에 파견을 나갔다가 다시 본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본사로 들어와서 보니 예전에 뿌렸던 씨앗이 각 부서에서 소화가 가능한 정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들 말은 안했지만 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효과가 있다.

다시 한번 시도를 하게되었다. 기존 주소록과 온라인 주소록이 상충되기도 해서 인계를 제대로 해줘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장과 총무를 만났는데 컴퓨터학과를 전공한 의욕넘치는 총무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YB는 해야할 일들이 이것저것 많았다. 세번째도 성과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는데, 이제 한국인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네번째

동생일 겪으면서 너무 많은 동아리 사람들이 와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시기는 미루어 두고 있었는데 12월에 사람을 만나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후배들도 만나기로 했다. 네번째 달라진 점은 중심을 YB에서 OB로 변경하기로 한 점이다.

한명만 만나려했다가 상황이 아닌것 같아 더 알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만남보다도 그 과정자체가 알려주는 주 내용이었다. 모인 사람도 어느정도 되었고, 이해도 된것 같아 이번에는 될것 같았지만 역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점들이 만들어 졌다. 블로그 2개. 이젠 그 블로그에 있는 내용만 계속 반복하면 된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들이 있다. 그 시간들에 맞추어서 정보를 생성하는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내 상황도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선은 내놓는 것이 필요했고 지금 돌아보면 그간 시도했던 노력들이 있어서 이렇게 단기간에 정리가 될 수 있기도 했다.3 안되는건 안되는거고.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 알게되었다. 이번에는 앨범을 만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다섯번째

매주 토요일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가다보면 같이 걸어갈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하게될까.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덕분에 공부할것, 정리할 것들을 진도 나갈 수 있었다. 다섯번째 시도에서 중심으로 하는것은 이제 내가 처음부터 알려주지는 않는다는것이다. 지금 정리된 양도 많다. 정리된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소화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소화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 때가 언제일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8년 금융위기같은 상황이 또 오기 전에 그 시기가 먼저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바라는 모습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겠어. 외계어 같아.

알것 같았던 친구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시 어려운가보다. 바라는 모습으로 마무리 지어야 겠다.

  1. 동아리의 행사가 있으면 바로 공지되고 전파된다.
  2. 노래, 영상이 온라인의 공간에 있어서 보고싶을때 언제든지 볼 수 있다.
  3. 공연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Mix되면서 어울려진다.
  4. 동아리의 블로그나 영상채널이 흥하게 된다면 홍보,스폰서를 온라인 광고로 받을 수 있다.
  5. 2번의 내용을 가다듬어서 컨텐츠화 할 수 있다.
  6. “온라인”도 하나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잘 소화했으면 좋겠다.
  7. 지속가능한 운영수익이 가능한 동아리가 된다. 이는 YB만으로는 안된다 OB가 Producer가 될때 가능하다.

노래 동아리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그 노래의 정도가 컨텐츠가 된다.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과 준비하고 난 다음도 컨텐츠가 된다.

선배의 경험과 후배의 궁금증이 연결될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된다. 돌아보면 우린 얼마나 많은 삽질과 뻘짓을 하고 지냈는가. 경험을 듣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 이것도 어렵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