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 아는 것, 깨닫는 것

대화와 컨텐츠

평소 대화들이 컨텐츠로 가치가 있을 것인가. 읽을 가치가 있는 컨텐츠와 상품가치가 있는 컨텐츠로 구분될 수 있겠지만 우선 그 가치가 있는 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다.

글감으로 할 수 있는가

평소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은 형상화 된다. 내 눈앞에서 수첩에, 노트에 문자와 그림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관계에 따라 음성정보로 변환되어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그 정보들은 과거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맥락에 따라 만들어진다.

글감들의 제목을 정하자면 “컨퍼런스를 피드백 하는 방법, 트윗을 백업하고 돌아보는 방법, 지식을 가다듬고 좋은 정보를 선택하기, 블로깅과 사람들 그리고 배움, 매니지먼트의 본질, 전문가와 초심자에게 각각 효과적으로 리뷰하기, 글과 이메일의 힘, 미학오디세이로 본 1994년의 책과 2014년의 책, 이현세 – 천재 방법, 보는 것과 아는것과 깨닫는 것”

보는 것, 아는 것, 깨닫는 것

빛이 망막으로 들어오고 식별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 한다, 그 정보가 대뇌피질에 있는 정보와 대응되거나 피질에 가소정을 가질때 아는 것이라 한다. 의식레벨에서 벗어나 무의식 레벨로 들어올 때 깨닫는 것이라 한다. 깨닫는 것은 대뇌 피질에서 벗어나 변연계를 자극하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항상 그렇게 이야기 했잖니

보는 것, 아는 것, 깨닫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고 읽을 수도 있고, 가르침으로 배울 수도 있다. 어떤이는 fMRI로 실험을 통해 알게될 수도 있다. 우리네 어머니가 김장하면서 물어본다. 어떤 걸 배우고 왔니. 설명한다. 그럴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옛 선인들이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말씀. 당연한 것을 힘들게 배워왔다는 식이다.

진리와 과학을 접할때마다 느끼는 것은 옛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직관과 생각으로 알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 큰길을 다시 검증하면서 “과연 그렇구나”라고 따라가고 있고, 거인들의 어깨위에서 더 넓게 조망하고 있지만 그 과정자체에서 “과연 그렇구나”라고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즐거움이 없다면? 사람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해줄 것이다. “좀 더 공부해봐” 또는 “왜 그걸 하고 있어?” 대부분 전자에 가깝지만.

같은 스토리도 어떤 지식을 접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가질 수 있고, 그 색깔이 콘텐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