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ive Biases

인간은 입력 정보처리의 부담을 줄이고 상황을 예측하기 위하여

  1. 자극에 의미를 부여하며(effort after meaning)(Bartlett의 표현) 범주화
  2. 자극에 대한 해석을 구성(Bartlett이론)
  3. 자극 대상(현상)에 대하여 자기나름대로 직관적으로 편향적(Kahneman 이론) 내러티브(Bruner 이론)를 구성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논리적 합리성의 이성적 원리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 ,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자신만의 [내러티브] 틀에 서있고, 누구나의 마음 작동 메커니즘에서 뿌리깊이 이미 심어져 영향을 주는 117개나 되는 인류 보편적 편향(Cognitive Biases)의 작동에 어쩔 수 없이 (의식하건 안하건 간에) 좌우되는 “가여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은 대중의 우매함에 대하여 날선 비판을 할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한국인이  보편적 인간 특성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과거에 보다 일찍, 거듭 말하지 못한 자신들의 [무거운 책임]에 대해서 날선 자아비판을 하여야 합니다.

출처: 대선 관련 글에 대한 사후의 덧칠(이정모 교수님  블로그)

[교수님 추천도서]

  1. Kahneman, D., Slovic, P., & Tversky, A. (1982).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번역본 ;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아카넷, 2006; 대우학술총서)
  2. Kahneman의 2011년 책 [생각에 관한 생각] (김영사) – 원저명: [Thinking, Fast and Slow]

[인지] 에 대하여 공부하기 절차 안내 : 네이버 블로그. 130421

행함,삶 그리고 앎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삶’이 곧 ‘앎’ 이다.
– 마투라나, 바렐라, 1995

출처: 이정모 (@metapsytw)의 홈페이지 http://bit.ly/L7NV1A

Human nature is not found within the human individual
but in the movement between the inside and outside,
in the worlds of artifact use and artifact creation
– Engestroem, Miettinen, Punamaeki, 1999

 

😐 함과 앎이 연결되어있고 행동의 연속이 삶이라는 行을 이룬다는 것. 인간 내면을 볼수 있는 감각기관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내가 만든 것을 통해 내면을 볼수있다는 것. 이 두가지 삶에 대한 막연한 느낌이있었다. 막연함이 다른 사람의 언어와 이야기로 눈 앞에 정갈하게 나타날때 또다른 감동이 일어난다. 이럴때 글이란 문자를 매개로 서로의 생각을 Sync하는 것이라는 박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기실 막연한 느낌이라는 것도 여러 선험자들의 말과 글을 통한 얻음이 바탕이다.